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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2 오후 6:30:12 입력 뉴스 > 여행정보

죽음의 항해(쓰시항에서 구시모토항까지)
오만톤급 상선과 충돌한 항해 경험담(2015.1.9. 8:30 ~1.11. 9:00)



 

 

오만톤급 상선과 충돌한 항해 경험담(2015.1.9. 8:30 ~1.11. 9:00)

 

5,6미터의 파도를 일으키며 낙엽 같은 요트를 삼킬 것 같은 강풍이 몰아치던 깜깜한 새벽 2시, 그런 바다위에서 설상가상으로 5만(?) 톤급 상선과 충돌해 4시간 가까이 표류하다 구조된 것이 벌써 한 달 하고도 열흘, 또 하루가 지나간다.

 

미에현 쓰시항 ~ 통영항간 항적도 (약 700마일=약 1,130Km)

 

그 때의 섬뜩함, 막막함, 이런 것들의 것을 어떤 표현으로 해야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을지……. 아무튼 그 당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으며, 한 순간, 정신 착란이 일어난 듯, 정말 아찔한 상황…….

 

끔찍한 해상사고로 죽음과 맞닥트린 항해, 천운으로 살아나긴 했다. 이것을 두고 ‘죽음의 항해’라 부르고 싶다. 이것은 아마 이미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 우리와 함께 죽음의 고비를 넘긴 1983년식 야마하RC정, 38피트, 미에현 쓰시요트허브

 

우리들 일행이 일본 미에현 쓰시요트허브를 출항한 것은 2015년 1월 9일 밤 8시 30분, 1983년식 야마하 일본요트를, 그것도 30년이 훨씬 넘은 요트를 한 번의 시험운항도 해보지 않고 그냥 출항했다는 것이 지금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며,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이것은 대행사고를 부르는 시초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미에현 쓰시요트허브에 육상 계류 중인 수 백대의 요트

 

출항지는 미에현 쓰시요트허브, 이곳은 일본 혼슈의 미소강 종착지점인 일본 미에현과 아이치현을 끼고 있는 이세만에 있는 요트 전용항구이다. 겨울밤이라 그런지 이세만에는 떠 있는 배 한 척 없이 달빛만이 고요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기에 우리가 끄는 배의 엔진소리와 뱃머리에 찰삭이며 부딪는 잔물결 소리,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환한 달빛이 조화로운 밤바다였다.

 

▲ 우리가 가져갈 '시티리듬호' 앞에서 기념촬영

 

사와다상은 출발하기에는 일기가 좋은 날이 아니라며, 좋은 날을 기다렸다가 출발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아니 김 선장은 그 말을 뒤로 한 채, 출발을 강행하였다.

 

초행인 우리들로서는 김 선장의 진행대로 그저 따르는 수밖에 없는 처지, 모든 권한은 김 선장에게 맡겨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날 밤 출항의 날씨는 풍향은 2,3노트의 북동풍이었고 바다의 파도는 잔잔하여 운항하기에는 아주 좋은 상태였다. 사와다상의 걱정 어린 조언은 이내 우리 머릿속에서는 사라져 버렸고, 우리들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의 통영항까지 장장 700마일이 넘는 항해는 시작 되고 있었다. 김 선장의 운송료는 1마일당 만원, 700만원으로 책정이 되어 600만원은 이미 지불 하였다.

 

▲ 자전거로 등교하는 미에현 쓰시시의 학생들

 

김 선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야간항해에 익숙해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나도 이번이 일본 야간항해는 두 번째, 그래도 야간항해는 자신이 없다. 그렇게 배 위에 앉았는데, 달빛이 고요롭다.

 

지난 이틀 동안 관광지가 아닌 쓰시항 근처의 도시에서 보낸 시간들은 한국과는 아주 색다른 새로움에서 오는 호기심들이 눈에 채워졌고 나에게는 진기한 시간들이었다.

 

▲ 이틀동안 묵었던 호텔(일본에서 숙박은 모두 호텔이다. 여관, 모텔 없음)

 

주차를 위반하는 차량도 없고 야간에 음주 단속하는 경찰도 없었다. 그런데 밤에는 아무도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으며, 낮이건 밤이건 주차위반하는 차량은 한 대도 보지를 못했다. 큰 식당은 어쩌다 하나 정도 보이는데 반해, 작은 식당들은 자주 눈에 띄었다. 비록 작은 식당이지만 주차장은 넓었다. 차고지 증명서 발급과 월 주차료 수입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귀신이라도 나올것 같은 사당, ........

 

월 주차료는 대략적으로 우리 돈은 30만원에서 50만원이라는데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다. 차고지 증명만 하면 끝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 개당 우리 돈으로 천원 천오백하는 너무도 맛있는 쓰시식당앞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두 시간 남짓 흘렀을까 쓰시항이 이제는 아득한 불빛만 남긴다. 또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이세만을 벗어나니 파도가 거세어진다. 나비오닉스 앱의 해도를 보며 우리는 바다속에 숨은 여를 피해 이세만을 벗어났다.

 

태평양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해류 탓인지 파고가 더욱 높아진다. 그래도 38피트의 대양용 요트라 이 정도의 파도에는 끄떡도 없다. 어둠 속을 높은 파고와 실랑이를 하며 시속 6노트에서 7노트로 거침없이 우리는 항해를 했다.

 

▲ 생맥 한 잔씩, 이때가 정말 좋은 한 때.....

 

자동항법장치 덕으로 수월하게 항해를 할 수 있었고, 칠흙 같은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아침이 찾아왔다. 광대한 태평양이 눈 앞에 푸르게 넘실거리며 펼쳐져 있었다. 푸른 물결 위에 밝게 빛나는 아침햇살, 태평양을 박차고 떠오르는 힘찬 아침햇살에 세수를 하고는 아침을 준비하였다.

 

배에서 먹는 밥맛은 새롭기는 하지만, 쓰시에서 먹던 쓰시나 우동, 기름끼는 약간 있지만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던 맛있는 식사가 간절하게도 생각난다. 관광지의 식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던 일본 토속의 맛이 그대로 배여 있던 식당의 밥상이 정말 그리웠다.

 

▲ 수상계류장으로 이동 중인 '시티리듬호'

 

그렇지만 여기는 지금 망망대해의 바다 가운데, 그저 생각만으로 족해야 했다. 그렇게 아침을 대충 해결하고 일본의 해안을 바라보면서 항해를 계속했다. 해안은 스티로폴이나 비닐 같은 쓰레기는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고 아주 깨끗한 해안을 일본인들은 지키고 있었다.

 

▲ 시티리듬호의 일본인 선주(가운데)

 

모두 태평양으로 떠내려가 그런 것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하여튼 그들은 아주 깨끗한 바다를 가꾸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갔을까 바다 위에 부표 같은 것들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 정치망 같은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데, 양식장이란다.

 

우리는 이 양식장을 피하기 위해 한 참이나 비껴 돌아서 나아갔다. 우리나라처럼 스티로폴이라면 눈에 잘 띄었을 터인데 스티로폴로 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플라스틱 같은 재질로 된 부표들이었다.

 

▲ 드디어 야간항해 시작, 출발하면서....

 

밤에 이곳을 지나쳤다면 양식장에 갇혀서 꼼짝도 못하고 분명, 큰 낭패를 당하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야간에 표시하는 반짝이 등이 겨우 하나 있는 곳도 있었고, 많아야 두 개 정도이었다. 양식장의 넓이나 규모로 볼 때 위험을 알리는데는 아주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밤에는 해안 가까이 항해하는 것은 무조건 피해야 함을 알았다. 내리쬐는 태양아래 넘실거리는 파도와 동무하며 항해를 한다는 것, 참으로 힘든 것임을 새삼 깨닫았다. 망망대해에 일엽처럼 두둥실 떠서 가는 느낌이란 인생의 여정과 같음을 잠시 느꼈다.

 

▲ 추운 겨울이라 완전 무장.....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해가 기울고 있다. 카스우라항(?)에서 1박을 하고 날씨를 보고 다시 출발을 결정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그냥 바로 가잔다. 아,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내 고집도 보통이 아닌데, 이 상황에서는 한 사람, 선장의 말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항해 중에는 웬만하면 따라 주어야 순항을 할 수 있기에 내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 역시, 요트복을 입어야 멋나네...

 

나중에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어둑한 저녁이 되어서야 구지모토항에 들어섰다. 나는 다시 이곳에서 쉬었다가 가자고 제안을 했다. 아무래도 야간항해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나의 제안은 묵살 되었다.

 

자존심이 좀 상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녁도 먹지 못한 채, 키를 잡았다. 그렇게 한 참을 갔을까 밤 10시가 넘었는지 어떻게 된 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강풍이 일기 시작했었다.

 

▲ 사고 나기 6시간 전의 위치....

 

파고는 5미터를 훨씬 넘는 듯이 보였고, 큰 산처럼 다가와서는 요트를 높이 쳐들었다가는 다시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듯이 하며 마치 장난감 갖고 놀듯하였다. 시커먼 파도가 몰려와서는 사막의 모래능성처럼 에워싸며 요트를 삼킬 듯하기도 하였다.

 

강풍이 쏟아내는 바람소리와 파도가 뱃머리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소리, 정신이 아찔아찔해진다. 몇 시간을 그렇게 시속 2노트로 항해를 계속하였다. 서서히 다리가 마비되어 온다. 사고로 다친 양쪽의 발목이 드디어 발짝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 칠흙같은 어둠 속의 항해...

 

더 이상 조타를 잡을 수가 없었다. 키를 김 선장에게 넘기고 선실로 들어섰는데, 심하게 배멀미가 시작된다. 비닐봉지를 찾아 입에 물고 계속 구역질을 하고 있는데, 김 선장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다시 구지모토항 쪽으로 회항을 한다는 것이었다.

 

▲ 우리를 구조하려 왔던 '우진파이오니아'

 

속으로는 이런 정신없는 짓거리를, 내가 그만 하루 쉬자고 했을 때, 그랬으면 지금 이런 위급한 상황은 당하고 있지는 않았을텐데, 하며 혼자서 속으로 나무랐다.

 

높은 파고에 강풍, 키를 잡은 김 선장이 당황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되는 구토로 환각증상이 일었으며, 옆에 우리들 외에 어떤 사람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 일본해상보안청 함정

 

하여튼,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바람소리, 높은 파도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배가 크게 흔들렸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새벽 2시 30분쯤으로 기억된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직감적으로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찰라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쳤다.

 

▲ ①상선과 충돌 예상 위치 ②상선과 충돌 후, 표류되어 간 위치

 

밖으로 나가보니, 눈앞에는 크다란 절벽 같은 것이 떡 버티고 있었고 우리의 시티리듬호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여기에 들이받친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표류하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라고 그 크다란 상선을 향해 나도 모르게 있는 힘껏 두려움에 젖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그 무지막지하게 큰 상선은 멈추는것 같이 보였다가 그냥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우리 눈 앞에서 서서 멀어져 가버렸다.

 

시티리듬호가 얼마나 부셔졌는지 알 수 없었고, 일단 배에 물이 들어오는지 확인하라는 목소리가 들려 확인한 끝에 물은 들어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사람 살려!’라는 소리를 순간적으로 그렇게 크게 외쳐 본 적은 이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 일본해상보안청 2대의 함정에 호위 되어 구시모토항으로 피항 중

 

모두들 정신이 혼비백산하여, 한 사람은 집으로 전화를 하고 또 김 선장은 무전기로 ‘메이데이’, ‘도조도조’를 외쳤다. 나는 밖에서 대형 라이트로 지나는 상선을 향해 SOS 신호를 계속 보냈다. 모두들 밖은 어떻게 되던 선실 안에서 도움만을 요청하고 있었다.

 

허지만, 우리의 절박하고 안타까운 구조 신호는 모두 물거품이었다. 아무도 우리의 외침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상선도 그냥 지나쳐 갔고, 무전기 속의 외침도 메아리되어 헛돌기만 하였다.

 

▲ 와카야마현 구시모토항

 

수 만톤급의 상선과 방금 충돌이 일어났는데도 아무도 밖의 바다 상황을 주시하지 않고 선실에서만 난리를 치고 있었다.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당시 밖에는 쉴새 없이 많은 상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정말 위험했다. 주의하지 않으면 제2의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상황임을 아무도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 만신창이가 되어 구시모토항에 정박 중인 '시티리듬호'

 

그러던 중에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 해경에서 연락이 왔다. 다행이 지금 우리 요트 옆을 지나는 한국상선이 있으니, 곧 우리 쪽으로 갈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SOS 신호로 빛을 날리면서 우리의 위치를 계속적으로 알렸다.

 

표류를 한 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제주 우진파이오니아가 눈앞에 나타났다. 순간,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정말 반갑고도 반가웠다.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역시, 내나라가 최고구나, 그렇게 SOS를 보내도 한 놈도 아는체도 않고 무정하게 그냥 지나쳐들 가버렸다. 역시 내나라 대한민국이 최고야! 하는 감격스러움이 절로 솟았다.

 

▲ 구시모토항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쇠말뚝

 

헌데, 우리 배로 다가온 이 파이오니아배의 선원들은 우리가 침몰 중에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였는지, 요트를 파이오니아 가까이로 끌어 당겨 그 큰 배에 붙였다. 순간 요트는 충돌 때와 같이 파손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간힘을 다 써 우진파이오니아와 떨어지게 사력을 다했다.

 

다행이 우진파이오니아와 떨어져 있으면서 일본해상보안청의 구조팀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사고 이후, 4시간이 훨씬 지난 뒤라고 생각될 만큼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일본해상보안청의 구조선이 나타났고 견인 줄을 건네 받았고, 우진파이오니아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손을 흔들어 답례하였다.

 

▲ 피해 선박을 조사 중인 일본해상보안청 요원들, 충돌 시 묻은 페인트 채취 

 

우진파이오니아, 정말 고맙기는 하였지만 우리 요트를 망가트린 것에 대해서는 원망스럽다. 당시 상황을 우리 요트가 침몰하는 급박한 상황으로 인지한 것인지 우진파이오니아 선원은 요트의 안전을 생각지 않고 우리를 구조하는 것에만 신경을 써서 그랬는지 요트의 후미 부분이 파손 되어 버렸다.

 

무전으로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생각하였다. 일본해상보안청에서 인명 구조용 헬기와 우리 요트를 예인할 또 다른 구조 함정과 함께 나타났다. 부상자가 있으면 바로 헬기로 수송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는데, 우리 측에서 응급부상자가 없음을 확인하고 헬기는 잠시 후 돌아갔다.

 

▲ 험난한 파도와의 사투를 말해 주는 너덜거리는 신발 

 

대신, 일본해상보안청 요원 2명이 우리들의 안전을 돕기 위해 요트에 승선을 하였으며, 잠시 후, 요트를 예인하기 위해 로프를 요트에 묶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다 묶고 나니 이 상태로 예인을 하게 되면 요트가 부서진다며 김 선장은 예인을 극구 반대하였다.

 

일본해상보안청에서는 예인을 하다가 배가 파손이 되면 보상을 해 준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김 선장이 극구 반대하여 김 선장이 혼자서 10시간 넘게 높은 파도와 싸우며, 쌩고생을 다해 항해해서 밤 9시에야 구지모토항에 도착 할 수 있었다.

 

▲ 1월 10일 구시모토 출항 오후 8시 위치

 

우리는 오사카에서 파견된 일본해상보안청 요원에게 간단한 조사를 받았고 호텔에 투숙을 하였다. 다음 날 우리는 또 다시 아침 9시부터 사고 경위 조사를 받았고 오후 늦은 6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음날 오전에도 다시 조사를 받았다.

 

그렇게 3일밤을 구지모토항에서 보내고 이른 아침 간사이공항으로 해서 김해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날이 1월 14일 수요일 밤이었다.

 

▲ 구시모토 출항 후, 11일 새벽 2시경 위치

 

2015년 새해 정말 천운으로 우리는 살아남은 것이다. 다시금 일본해상보안청 요원들과 특히, 13시간 넘게 우리와 함께 추위에 떨며 함께한 젊은 요원 2명에게 감사드리며, 우리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3일씩이나 조사에 임하며 고생한 일본해상보안청 다나베 부장님과 한국어 통역을 한 요원에게도 감사드린다.

 

참고적으로 이번 경험에서 보건데,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요트와 관련된 레저산업이 활성화 되지 않은 상태이고, 보험관련 등에 관해서도 아주 미비하여, 요트 딜리버리를 하고 있는 배달책을 맡은 사람과 대부분 구두 계약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불의의 사고로 요트 파손 시에나, 그 외의 문제 발생 시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막연하다.

 

앞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구매자와 배달책을 맡은 자의 양자간 보험을 논의하고 기타 서면상의 계약이 반드시 필요함을 깨달았다.

 

▲ 구시모토 출항 후, 11일 새벽 2시 30분경 선박 충돌 후 표류한 위치

 

그리고 이번의 이런 대형 상선과의 해상사고 이후 대처 방안에 대해 우리는 하나도 없었고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효용성이 없었다.

 

국제법상 ‘동력선과 비동력선과의 운항에서 동력선이 비동력선을 비껴가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실제 이 법은 있으나마나 한 법으로 손해를 당한 피해자인데도 그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 구시모토 기차역

 

이유는 이런 대형 상선의 보험회사는 대부분 영국이 본사이고 각국에서는 법적 대리인을 두고 있으며, 최종 결정은 본사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사를 상대로 소송에 임하려면 국제변호사를 선임하여야 하는데, 그 선임 비용이라는 것이 시간당 750불이고 소송기간은 최하 6개월, 그 이상으로 걸린다는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큰 정도를 넘어 엄청난 것이어서 몇 백만, 몇 천만 원 보상 받으려고 6개월 이상 걸리는 소송을 하다가는 패가망신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해양수산부 소속의 해상안전심판원이라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중재 역할을 할 뿐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고 하였으며, 특히나 외국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더더욱 난감과 난색을 들러낼 뿐이었다.

 

이런 불행에 처하면 난감하고 암담함에 빠질 수밖에 없어 보였다. 이런 것을 알았을 때, 우리나라가 국제적 관계의 대항에서 얼마나 나약하며 취약한 맹점을 안고 있는 국가인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이런 대형 상선의 보험사가 손해배상할 수 있는 최대 보험금이 1조원이 넘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대처 능력이 없는 우리로서는 그냥 사정하고 애원해서 주는 대로 보험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 상대면 텐트쳐 놓고 꽥꽥거리며 데모라도 할 수 있지만, 어느 먼 나라 영국이고 보니 그래봐야 어느 누가 들어 줄까나!

 

 

 

 

 

 

 

 

 

 

 

 

 

 

 

 

사천인터넷뉴스(snews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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